1/17/2014

이화여대 역사(ewha womans university history)

이화여대 역사
ewha womans university history



얼마 전, 제 친구와 이화여대에 다녀왔어요.

sony nex 5t 카메라를 산 제 친구는

이리저리 쏘다니며 사진 찍기 바쁩니다.

sony nex 5t 카메라 살 때 얼마나 물어댔는지 모릅니다.

이게 낳을까? 저게 낳을까?

흰색을 사라 그리 얘기했건만...

회색을 사서 열라 욕해댔는데 회색 sony nex 5t가 꽤 괜찮더라구요.





내 평생 이화여대 갈 일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친구 덕분에 이화여대 구경을 다 오네요. 허허...







겨울이라 사진이 잘 나올까 생각했는데

그래도 꽤 괜찮게 찍었다며 제 친구는 자랑질을 합니다.


친구는 얼마전까지 사진 출사도 다니면서

카메라 공부도 했거든요.


저는 사진을 잘 못 찍는 편에 속해 눈이 낮습니다.

한... 100장 찍어 그 중에 하나 건지는 사진 실력이니... 하하...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대학, 이화여자대학교



저는 오래된 역사가 좋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참 좋습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대학인 이화여대 곳곳을 둘러보니

국사책에서 보던 '이화 학당'이 생각이 나더라구요. 



1886년 5월, 미국 북감리교 여선교부의 선교사인

메리 스크랜튼 여사가 서울 정동의 자택에서 

1명의 학생으로 수업을 시작한 것이 이화학당의 시초였습니다.


이화학당이라는 명칭은 

1887년 2월, 고종황제가 하사한 것인데요.

그때 당시 학당 근처에 피던 배꽃의 이름을 따서 

이화(梨花)라 명명했다고 하는 설이 있는데요.



19세기 말, 개화의 싹이 움트던 한국사회에서

이화학당이 문을 연것은 굉장히 혁신적인 일이었습니다.

여자를 대상으로 한 학교가 설립된다는 것 자체가

봉건적인 한국 사회에서는 여태껏 볼 수 없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1912년에는 보통과, 고등과, 증등과 및 대학과가 설치되었는데요.

한국에서 여성고등교육은 시기상조라며 너도 나도 반대할 때

프라이 학장은 대학과와 보육학교 설립을 강행했습니다.

가정에 갇혀 살아야 했던 한국여성에게 보다 넓은 교육의 기회를 주려면

질높은 교육을 받은 여성 지도자를 배출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 결과 1914~1925년까지 배출된 이화의 졸업생들은

한국 근대화 과정의 제1세대 여성지도자군을 이루게 됩니다.








대학과 제1회 졸업생인 신마실라, 김애식, 이화숙님을 

보면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신마실라님은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까지 가신 분으로

독립운동 뿐만 아니라 뛰어난 영어실력을 겸비한 여성이었습니다.

게다가 특출난 장사수완으로 독립자금을 모았으며

해방 후에도 미국 각지에서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알리는 분이셨죠.






김애식(김앨리스)님은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을 가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서양의 음악학교를 졸업한 분으로

이화여대에서 오랜 세월 후학을 양성하셔서

근속표창까지 받으셨죠.



이화숙(이도리티)님은 변장의 귀재로 영화 속 스파이처럼 

다양한 작전을 펴 정보를 전달했고,

3·1운동 당시에는 상해로 건너가 애국부인회를 결성해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전쟁 때에는 적십자 조직에서 전방 구급 구호공작에 투입되어

활동하신 분이시죠.










오늘날의 대학은 취업의 관문이 되어가며

자신의 커리어의 꼬리표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 때 당시의 대학은 

자신이 배운 지식과 능력을 나라와 민족을 위해 환원하는 

사명의식이 강했던 것 같아요.


전쟁의 고통과 아픔 속에서

우리 선조들의 피값 덕분에 너와 나, 우리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는 둘로 갈라진 대한민국이 하나가 되어

함께 웃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


평화로운 나라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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